관상이란 영화를 본 이후 역사 영화 몇 편이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현빈, 한지민 주연의 ‘역린’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흥행에는 실패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조, 정조가 집권한 시대의 이야기라는 점에 끌려 선택하게 된 영화 ‘역린’의 역사적 배경을 기록해 둡니다.

 

 

영화는 정조가 집권하고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1777년 정조의 침전인 존현각에 암살자들이 침입한 사건인 정유역변을 각색한 내용입니다. 임금을 도대체 왜 암살하려 했던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이전 왕이었던 영조 시대부터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조는 6명의 부인에게서 2남 7녀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 중 첫 아들인 효장세자는 어린 나이에 죽게 되고 영조가 40이 넘은 나이에 영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가지게 된 아이가 정조의 친부 사도세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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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늦은 나이에 아들이 태어난 것을 매우 기뻐했다고 하며, 너무 기쁜 나머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 실수는 100일도 안된 세자를 생모와 떨어트려 선의황후(경종의 계비)가 살던 저승전에 머물게 하고 경종과 선의황후를 모시던 궁인들로 하여금 세자의 시중을 들게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영조는 왜 자신과 반대편에 서 있던 그들에게 아이를 맡긴 것 일까요?

영조의 입장에서는 선왕을 모시던 궁인들이 세자를 모시게 함으로 사도세자의 권위를 높여주고, 경종 독살 설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추측되지만, 당시 궁인들은 영조와 뜻을 달리하던 소론쪽과 친하였고 영조의 뜻과는 다르게 동궁(세자가 머무르던 궁)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중록에 따르면 세자에게 공부를 게을리하게 하고, 병정놀이를 가르쳐 놀이에만 빠지게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 매우 똑똑했던 세자가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이자 영조는 세자에게 인색해 지기 시작했고 세자도 아버지를 무서워하며 이런저런 이유로 영조의 얼굴을 뵙는 ‘진현’을 계속 빠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둘 사이는 너무 멀어지게 되고 영조의 사도세자를 꾸짖는 정도는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더해 갑니다.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사도세자는 정신질환을 가지게 되는데 옷 입기를 어려워하는 의대증이 그 대표적 질환이며, 반인륜적인 폭행, 살인, 강간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현대의학의 시각으로 한중록을 분석해 본 결과 사도세자는 양극성장애(조울증)의 증상을 가진 것으로 해석 할 수 있으며 당시에는 정신 의학 지식이 부족했기에 허구로 지어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아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인 임오화변이 발생하였고 이 때 역린의 주인공 정조(이산)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고 정조가 왕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노론 측이 정조를 암살하는 계획을 세우고 정순왕후 김씨(한지민)가 그 계획을 허락하며 정유역변이 발생하게 되고 그날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영화가 바로 역린입니다. 단 정순왕후 김씨를 정조의 숙적으로 묘사하는 것과 노론을 사악한 독재를 하는 무리로 치부하는 것 등의 묘사는 역사적 고증이 부족했다는 의견 또한 있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역사적 사실 이외에 영화를 보며 몇몇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배우들의 대사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배경음악은 너무 커서 음향 발란스가 맞지 않았던 것이 하나이고, 나머지는 현빈이 왕의 역할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얼굴인 것 같다는 부분입니다. 물론 현대극에서 현빈이라는 배우는 이미 매력을 충분히 뽐내고 있지만 왕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보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너무 지루하지도 않았던 영화 ‘역린’이었습니다.

한국사에 대해 무지했던 나에게 설민석 선생님은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그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한국사에 대해 관심을 자연스레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 영화가 나오면 가끔 역사적 해설 강의를 해주는데 영화 소개를 해주는 프로그램보다 집중력 있게 시청하게 된다. 오늘은 이정재, 송강호 주연의 [관상]이라는 영화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기억에 남는 부분을 기록으로 남긴다.

영화에서는 수양대군(이정재)이 당시 어린 왕이었던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역모를 세우는 것과 이를 막기위한 고명대신 김종서(좌의정)의 대립 구도에서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을 개입시켜 스토리를 전개해 나아가는 구도이다. 그럼 영화의 역사적 배경은 어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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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조선시대 전기의 왕조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태조(이성계) - 정종 - 태종(이방원) - 세종 - 문종 - 단종 - 세조 - 예종]

영화에서는 문조-단종-세조로 이어지는 145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하였다. 세종에게는 네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세자로 책봉되어 훗날 문종이되는 첫째, 아버지 세종 보다는 야심가였던 할아버지 태종의 성향을 이어받은 둘째 수양대군(이정재), 수양대군의 많은 견제를 받았으며 조선시대 한석봉과 더불어 명필로 이름을 날린 셋째 안평대군 그리고 금성대군이 그 넷이다.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종은 세종의 좋은 면을 물려받아 그가 통치를 하던 시기 조선은 태평한 시기를 맞이하였으나 세종과 마찬가지로 건강이 좋지않아 2년 정도의 짧은 기간동안 조선을 통치하다 어린 아들이었던 단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문종은 죽기 전 어린 아들을 매우 걱정하였고 아들을 위해 고명대신들을 불러 자신이 죽고난 후 아들의 보필을 부탁하게 된다. 이 때 고명대신 중 한사람이 바로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백윤식)이며 김종서는 세종이 여진족 정벌을 하는 과정에서 세운 4군 6진, 특히 함경도 지방의 6진을 설립 할 당시 큰 공을 세운 공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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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고명대신들의 보필에 의한 단종의 정치가 이루어졌고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야심 가득한 수양대군은 계유정란을 일으켜 영의정(황보인), 좌의정(김종서) 등을 죽이고 눈엣가시였던 안평대군을 유배보낸다(훗날 죽임).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단종은 스스로 왕위를 삼촌이었던 수양대군에게 넘기며 왕위에서 물러났으나 훗날 삼촌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계유정란의 과정에서 수양대군을 도와 뛰어난 지략을 펼친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칠삭동이로 태어난 한명회이다. 그는 세조의 왕위를 이은 예종과 성종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며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두 왕의 장인이 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영화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으나 한명회라는 드라마가 있었을 정도로 얘기 거리가 많은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서울 집값중 최고를 자랑하는 곳 중 한곳인 압구정의 유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인데, 한명회가 은퇴를 결심하고 서울 중심부에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만들었고 그 곳이 현재의 압구정이 되었다고 한다. 압구정이라는 의미는 '물새들이 희롱하는 정자'라고 하며 한명회는 자신이 권력보다는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이 정자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였다고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정말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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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이라는 영화를 본 지 시간이 꽤나 지났으나 설민석 선생님의 짧은 강의를 듣고 다시 봐도 좋은 작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 배경을 좀 더 이해하고 나서 보는 영화의 감회는 어떨지 조만간 다시 한번 보아야겠다.

[인물별 요약]

* 세종 : 태종의 셋째 아들로 왜구를 방어하기위해 대마도 정벌, 여진족 정벌을 위해 4군 6진을 세운 왕,

아들이 넷이 있었는데, 1. 문종 2. 수양대군(세조) : 야심가 3. 안평대군: 야심가, 명필 4. 금성대군

* 문종 : 2년 정도의 짧은 왕위를 가지고 지병 죽음

* 단종 : 어린 나이에 왕권을 이엇으나 스스로 수양대군(삼촌)에게 왕위에서 물러남

* 세조(수양대군) : 계유정란을 일으켜 영의정(황보인), 좌의정(김종서)를 죽이고 안평대군을 유배를 보낸 후 죽임

=> 死육신 : 1456년 단종 복위를 위해 노력하다 죽임을 당한 인물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 신숙주는 변절

=> 세조의 저주 : 단종의 어머니 헌덕황후가 꿈에 나타나 침을 뺏었고 그자리가 썩으며 문둥병에 걸림, 첫째 아들도 20세경에 요절,

둘째 아들인 예종이 왕이 되었으나 가위 눌림에 시달리다가 20살에 죽어버림

=> 말기에 자신이 벌인 일을 후회하며 절을 세우고 참회(원각사 : 현재 탑골공원터)

* 김종서 : 4군 6진을 세울 때 큰 공을 세운 문인으로 문종의 고명대신으로 단종을 보필

* 한명회 :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란을 일으킨 뛰어난 지략가(참고로 풍수지리에 능해 정자를 세움 -> 현재의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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