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었던 간짜장, 


나이가 들수록 음식점에 대한 호불호가 짙어지게 된 것 같다. 지난 주 토요일에 간짜장 만드는 영상을 보고 물기가 없는 뻑뻑한 간짜장을 먹어보고 싶은 생각으로 구글링을 하던 중, 인천에 위치한 혜빈장이라는 곳을 찾았고 집에서 꾀나 먼 거리였지만 혜빈장 간짜장의 사진이 내가 찾고 있던 비쥬얼과 제일 유사하였기에 망설임 없이 출발하였다. 그런데 1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혜빈장의 셔터가 반쯤 내려와 있었고, 토요일이라 당연히 영업을 할 줄 알았던 생각과는 달리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먼 곳에서 방문하는 분들은 꼭 전화를 해보고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사전에 확인 하지 못한 나를 잠깐 책망하였지만 혜빈장이 위치한 곳이 인천 차이나타운 근처였기에 혜빈장을 대신 할 만한 곳을 서칭하기 시작하여 용화반점, 신성루 등의 중식당을 찾았고 용화반점은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되기 직전이여서 신성루를 찾았다. 신성루 또한 방송을 탄 적이 있는 곳으로 방송을 탔다고 해서 다 맛있는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나, 주문했던 간짜장, 삼선짬뽕, 멘보샤(멘보하)의 맛은 동네에서 시켜먹는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간짜장은 내가 찾던 뻑뻑한 비쥬얼은 아니었으나 적당한 달콤함과 기름기를 유지하고 있었고, 짬뽕은 불맛이 조금 나는 시원함보다는 담백한 느낌을 강조하는 짬뽕으로 느껴졌다. 멘보샤는 몇번 먹어본 적이 없어 맛을 비교하기 힘들지만 바삭하게 튀게진 겉빵과 안에 있는 새우가 누구나 좋아 할 것 같은 향과 맛을 가지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방문한 인천 차이나타운, 

 
식사를 마치고 멀리까지 왔으니 어디라도 들러보고싶은 마음에 식상하지만 인천하면 떠오르는 월미도를 향해볼까 하던중, 차이나타운의 간판과 빨갛고 커다란 건물들을 지나치며 자연스레 주변에 주차 할 곳을 찾았다. 주말이라 빨간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고 갑작스럽게 관광지화 된 거리인지 5층정도의 빌라 건물의 3층 쯤에서 창문을 열고 관광객을 내려다보는 주민들의 모습과 동화마을이 조성되어 벽화가 그려진 골목골목에는 실외에 빨래를 건조하고 있는 모습에 오묘한 조화를 이루면서도 왠지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자장면 박물관에서 알게된 짜장면 가격 변천


골몰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짜장면 박물관을 발견하고, 1000원의 입장료와 함께 짜장면 박물관? 이라는 기대와 물건들 몇개 가져다 놓은 전시장 정도겠지라는 의심을 품고 들어선 박물관에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 볼 수 있었다. 



1. 자장면의 가격 변천
전시장에서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관람물 중 하나는 짜장면 가격 변천사였다. 1960년대 15원을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 140원, 1980년대 350원, 1990년대 2000년대를 거치며 계속 상승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평균가격은 4500원 정도라고 기재되어 있었으나 서울에서는 이제 4000원대 짜장면집 찾기는 쉽지 않아 진 것 같다. 50년간 400배가 올랐으니 많이 오른 것 같다는 생각과 한국은행의 통화량 자료와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아래와 같이 자료를 찾아 보았다. 1995년 이전의 기록은 찾기 힘들어 통화량 자료가 있는 1997년부터 한국 통화량의 변화와 짜장면 물가지수(2005년 기준=100) 변동을 살펴 보았다.  


재미 있었던 부분은 60년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짜장면 가격이 400배나 폭등하며 엄청난 가격 폭등이 온 것 같이 보였으나 1997~2016년 통화량(M2)의 증가가 4.8배 정도에 달했던 것에 반해 짜장면 물가지수는 2배 정도 밖에 되지 않아 1997년 이후부터는 통화량의 증가세에 비해 짜장면 가격이 안정화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서민물가지수에 반영이 되는 품목이라서 가격 상승이 안정화 된 것일까? 아니면 주재료인 밀가루의 수입이 확대되어 원가 상승이 더디었던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먹은 신성루의 간짜장의 가격이 6000원 이었고 앞으로도 이가격에 신성루 간짜장을 얼마간 먹을 수 있겠지만 임금상승이 동반되고 있는 현 추세를 봤을 때, 1~2 년 후에는 6000원으로 먹기는 힘들어 질 것 같다.





2. 혼, 분식 장려운동
한가지 더 재미있었던 부분은 혼, 분식 장려운동의 포스터였다. 혼분식? 무슨 말이지?라고 생각하며 포스터 옆에 있는 설명글을 보았더니, 1964년부터 1977년까지 10여 년 동안 이어진 장려 운동으로 쌀 중심의 식습관을 잡곡과 밀로 식습관을 전환하는 운동이었다고 한다. 포스터 내용이 '혼분식으로 튼튼한 몸과 새역사를 창조하자'이다. 요즘엔 정제된 밀가루 위주의 식단을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데 분식(粉食)으로 튼튼한 몸이라니,,, 당시 얘기하던 밀은 통밀 위주의 정제되지 않은 밀가루였단 말인가? 아마 그렇진 않았을 것 같다. 





3. 최초의 중국음식점 [공화춘(共和春)] - '
1883년 인천이 개항하면서 청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중국 음식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때 한국에서도 짜장면이 팔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 초창기의 짜장면은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중국색을 더욱 많이 띄었을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중국음식점이라고 알려진 공화춘이 1900년대 초반에 개업을 했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서는 1905년, 박물관에서는 1912년 개업, 1983년 폐업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차이나타운 거리에 4층정도의 건물로 공화춘이라는 중식당이 영업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박물관이 건물이 위치한 공화춘은 아마 현재 영업중인 공화춘과는 다른 가게일 것 같다. 박물관 건물의 공화춘의 의미는 신해혁명 이후 '共和春-공화국 원년의 봄'을 맞는다는 의미로 지어졌다고 한다.  


4. 자장면의 대중화 (사장표춘장+ 밀가루 지원)
1900년대 초반부터 존재하던 짜장면은 1948년 대중화의 큰 물결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사자표 춘장의 등장이 있었다. 중국 산동 출신 화교 왕송산은 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을 위해 중국 춘장에 캐러맬을 혼합하여 사자표춘장을 개발하여 보급하였고 정부에서는 6.25 전쟁 후 값싼 밀가루를 지원하였기에 둘의 시너지로 짜장면은 대중화를 맞이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는 짜장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는데 나이가 들어 해외에 오래 체류하면 가끔 짜장면 생각이 난다. 짜장하면 일반, 간, 쟁반, 사천 정도가 다였는 줄 알았는데 차이나타운을 지나치다보니 종류가 더욱 다양한 것 같다. 다음번에는 짜장면의 종류에 대해서도 확인해 보고 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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